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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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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상식적으로 알다시피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그런데 왜 굳이 4년마다 개최되는 것일까?

올림픽 부흥운동을 시작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프랑스인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을 근거로 4년마다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초창기 시절 ‘낭만’이 남아 있을 때 이야기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올림픽 개최를 4년에 한 번씩 여는 것은 상업적인 이유가 더 강하다(동계 올림픽이 어느 순간 하계 올림픽이 열린 2년 뒤에 개최되는 걸로 바뀌었다).

1회 그리스 올림픽을 기념하는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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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같이 열리는 것이었으나, 상대적으로 하계에 비해 흥행이 안 된다는 이유와 방송사의 압력 덕분에(1년에 두 번 올림픽이 개최되면 시청자들이 식상하다는 이유, 개폐막식 하이라이트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시청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과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이 같이 개최된 2년 뒤인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4년 주기로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다시 다른 스포츠 제전(대표적으로 월드컵, 아시안 게임)과의 시간 차를 고려해야 했다. 이제 스포츠로 순수를 말하기에는 너무나 상업적이 된 상황이다.

1928년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아이스 하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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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보면 근대 올림픽이 4년을 주기로 개최되는 근거가 되는 고대 올림픽의 4년 주기설은 과연 사실일까?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4년 주기로 올림픽을 개최했을까? 기원전 776년 에리스의 왕 이피테스가 올림픽을 부활시키기 전까지는 8년 주기로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러다 이피테스가 4년 주기 올림픽을 만들었다. 8년 주기 올림픽과 4년 주기 올림픽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고대 올림픽은 태양신인 아폴론과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만나는 8년 주기로 열렸다.

[출처 : Jastrow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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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올림픽은 제우스 신을 모시는 제전경기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제전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는 올림픽이라고 하나의 행사를 콕 집어서 시작한 운동회는 아니었다.

또한 제우스 외에 다른 신을 위한 제전경기도 열렸다. 제사를 지낸 다음에 제전경기를 여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너 나 할 것 없이 운동회를 열다 보니, 자연히 메이저와 마이너가 갈리게 되는데 그리스 전역에서 열리는 운동회 중 그랜드슬램 급으로 분류된 경기는 네 가지로 성지 올림피아에서 열리는 올림피아제, 네메아에서 열리던 네메아제, 델포이에서 열리던 피에티아제, 코린트에서 열리던 이스토미아제가 그것이었다. 이중에서도 으뜸을 뽑으라면 당연 올림피아제였다.

고대 올림피아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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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들 즉,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8년 주기였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숫자 8을 완전무결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8이라는 숫자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깊숙이 자리잡았는데 당시 스파르타 왕의 임기도 8년이었고 토지 분배도 8년을 기준으로 했다. 어째서 8인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태양의 신인 아폴론과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만나는 것이 8년 주기였기 때문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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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태양신과 달의 여신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당시 그리스의 공용 달력은 두 종류였다. 하나가 태양력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태음력이었다. 문제는 태양력과 태음력을 쓰는 것이 나라마다 달랐다. 때문에 8년 주기는 이런 그리스 사회의 태양력, 태음력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리스 공식 지정인 달력 자리를 놓고 싸웠던 태양력과 태음력, 결국 이들의 타협점은 바로 8년 주기였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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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력은 1년이 365일하고도 1/4이고, 태음력은 1년을 354일로 본다. 두 달력은 11일과 1/4일 차이를 보인다. 이 둘을 합치기 위해서는 태양력이 가지고 있는 11일과 1/4일을 태음력의 한 달 단위로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곱하기 8을 하면 된다. 그러면 딱 90일로 떨어진다. 태음력으로 따지면 3개월로 끊어진다.

그리하여 그리스의 국가들은 8년 주기의 생활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8년 주기가 4년 주기로 바뀌었을까? 이유는 올림픽 정신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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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76년을 전후로 해서 그리스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그리스는 거듭되는 전쟁과 전염병에 의해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엘리스의 왕인 이피테스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스파르타도 겉으로는 완강하지만 오랜 전쟁 끝에 많이 지쳤을 것이니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휴전 협상에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이때 등장한 명분이 바로 올림피아제였다. 신한테 제사를 지내는데 전쟁을 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난데없이 올림피아제를 한다는 것인데 누가 봐도 속히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리였다. 그러나 전쟁을 계속해 공멸할 바에야 당장의 부끄러움을 참는 게 낫다고 판단한 이피테스는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협상에 나서게 된다.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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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탁을 받았는데 당장 전쟁을 중지하고 올림피아제를 열라는 계시가 있었다며 설득했다. 스파르타 역시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다. 그 역시 전쟁이 길어지면서 지쳐 있었던 것이다. 이피테스는 스파르타가 정전을 받아들이자 이 명분을 좀 더 발전시킨다면 향후 벌어질 전쟁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올림피아제가 계속 이어진다면 스파르타 역시 이번에 했던 것처럼 전쟁을 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8년은 너무 길다. 그사이에 몇 번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야.’

그렇다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올림피아제를 많이 개최해 병력 동원의 명분을 제거해야 했다. 여기서 걸림돌로 등장한 것이 앞에서 언급한 ‘8년의 딜레마’였다. 태양력과 태음력을 맞추기 위해서는 8년 주기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그 8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어서 걱정이었다. 이피테스는 다시 한 번 무리수를 동원하기로 결심한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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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력에서의 8년은 12×8=96개월인데, 태음력은 여기에 3개월을 더해야 해. 96의 반이 48개월인데 99의 반은 49 아니면 50이니까 태양력의 4년이 48개월, 태음력의 반이 49개월 아니면 50개월. 억지로 우기면 4년에 맞춰서 올림피아제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올림피아제는 4년 기준으로 간다!’

이리하여 기원전 776년 4년 주기의 올림픽은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올림픽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참으로 미약했다. 이 당시 올림픽 종목은 단거리 달리기인 1스타디온(191.27m) 경주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던 것이 점점 판이 커지면서 투창, 원반도 생기고 레슬링도 하고 이종격투기(판크라티온)까지 종목이 늘어났다. 어쨌든 올림픽의 4년 주기의 비밀에는 전쟁을 피하고 그리스의 단합(?)을 위한다는 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거친 권투 경기인 판크라티온을 하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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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이다(프랑스 출신이지만 원래 조상은 로마 귀족이다). 그는 명문 귀족답게 생시르 육군 유년학교에 입학했으나 독일을 잠정적인 적으로 교육하는 학교 체제에 불만을 느껴 16세에 자진 중퇴,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난다.

그곳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의 교육 체제를 보며 엄청난 충격과 감화를 받는다. 당시 영국 교육의 중심은 스포츠였다. 그것도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하는 마라톤이나 럭비, 축구 같은 실외스포츠 위주였으며 그중에서도 마라톤에 대한 집착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영국은 어째서 이렇게 학생 스포츠에 열을 올렸던 것일까?

근대 올림픽 경기의 창시자 쿠베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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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은 유럽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부국(富國)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 세계가 영국의 안방이 된 상황이다 보니 부가 영국에 집중된 것이다. 문제는 배가 부르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고 축적된 부 덕분에 영국 사회는 퇴폐 문화의 침입에 무방비하게 됐다.

거리에 만연한 카바레와 카지노는 파리를 능가할 정도로 발전했고, 처녀에 대한 집착으로 스펀지에 토끼 피를 적셔 창녀들을 처녀인 척 공급하는 포주들이 들끓을 정도로 성생활에 탐닉했다.

세계 최고의 부국,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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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당시 기숙학교의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성생활을 물리적으로 차단하자 동성애와 자위가 만연해 사회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교육자들은 스포츠를 대안으로 생각했다. 아예 성생활을 생각 못할 정도로 몸을 혹사시키기 위해 ‘동료애, 건강 증진, 건전한 사고 함양’ 등의 이상을 내세우며 청소년들이 운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기숙사의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취침 전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아야 했고 이후 뜨거운 탕욕을 해야 했다. 취침 시에는 반드시 두 손을 침대 밖에 내놓고 자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영국 교육자들은 이런 체력 소모에 육상만 한 운동이 없고, 그중에서도 특히 마라톤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려 학생들에게 마라톤을 강요한다.

1896년 올림픽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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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탱은 이런 영국의 교육적 노력에 감동을 받아 이를 프랑스에서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문교상(文敎相)에게 거부당하고 일생 동안 프랑스에서 ‘왕따’를 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쿠베르탱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올림픽을 꿈꾸고 결국 IOC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영국 학생들의 자위를 예방하기 위해 시작된 마라톤의 중흥은 엉뚱하게도 근대 올림픽으로 발전한 것이다.

입구에서 바라본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의 파노라마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은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경기장이다. 칼리마르마로(‘아름다운 대리암으로 장식한’이라는 뜻)로도 알려져 있는데 세계에 있는 주경기장 중에 전부 대리암으로 만들어진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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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서울 올림픽으로 익숙한 1988년 하계 올림픽은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 즉, 16일 동안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이다. IOC 회원국 중 대부분인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었다. 혼성 그룹인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가 공식 주제곡이었으며 상모를 쓴 아기 호랑이를 형상화한 ‘호돌이’가 대회의 마스코트였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상모를 쓴 아기 호랑이를 형상화한 ‘호돌이’가 대회의 마스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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